내년부터 '디지털화폐'로 국고보조금 지급…세계 첫 실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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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년부터 일부 국고보조금이 현금·바우처 대신 디지털화폐(예금 토큰)로 지급된다.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화폐로 보조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는 것을 막고 행정·금융비용을 절감하려는 취지다. 공공부문에 디지털화폐를 도입하는 세계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.
◇공공부문 도입 세계 최초
2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한국은행과 협력해 내년 상반기 디지털화폐·블록체인 시범사업을 추진한다. 한은이 구축한 블록체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일부 국고보조금 수급자에게 디지털화폐를 지급하는 게 핵심이다. 연내에 디지털화폐를 지급할 보조금 사업을 추릴 계획이다.
이 디지털화폐는 한은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(CBDC)와 블록체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시중은행이 발행해 국고보조금 수급자 전자지갑(스마트폰 앱)에 송금한다. 화폐는 기존 통화가치와 연동되고 한은의 디지털 장부인 블록체인으로 실시간 확인·관리할 수 있다. 한은의 CBDC와 다른 점은 사용처가 제한된다는 것이다. CBDC는 현금처럼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지만 정부의 디지털화폐는 국고보조금 관련 수급자·사업자 사이에서만 거래가 가능하다. 예컨대 설비투자 보조금을 디지털화폐로 받으면 이 화폐를 건설·자재업체처럼 지정된 사업 거래처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.
디지털화폐는 실시간 추적이 가능한 만큼 보조금 오남용을 막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. 국고보조금이 올해 역대 최대인 112조3000억원 규모로 늘어나면서 부정 수급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. 지난해 부당한 방법으로 국고보조금을 받아 쓴 사례가 630건을 기록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였다. 연구개발(R&D) 지원금이나 시제품 제작 지원금을 술자리에서 사용하는 등 용도 외로 쓰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.
행정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. 기존 보조금은 은행 계좌에 입금되면 다시 거래처로 송금해야 한다. 이 과정에서 은행·카드사·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(PG) 수수료가 발생했다. 디지털화폐는 보조금 수급자가 거래 업체의 스마트 지갑에 바로 지급할 수 있어 수수료를 아끼는 것은 물론 지급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.
◇구윤철·이창용 ‘경제 투톱’도 성패 주목
정부는 시범사업 성과를 바탕으로 디지털화폐 사용처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. 온누리상품권, 지역화폐 등도 디지털화폐로 대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. 이 경우 정책 효과도 높일 수 있다. 특정 지역이나 업종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면 소상공인·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.
최근 지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도 디지털화폐로 지급하면 정책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. 디지털 신원 확인을 기반으로 개인별 전자지갑에 넣어주는 방식으로 지급 속도를 높일 수 있다. 중고 거래 등 개인 간 거래와 가맹점 허위거래(카드깡) 등 부정 사용을 걸러낼 수 있고 사용 추적도 쉬워 정책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·조율할 수 있다.
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은 총재도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다. 구 부총리는 예산 집행 효율성과 정책 실효성을 강조하며 적극 추진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. 이 총재는 CBDC 사업인 ‘프로젝트 한강’의 일환으로 이번 사업을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.